2020 우란시선 기획전시 화이트 랩소디(White Rhapsody) > 국내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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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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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우란시선 기획전시 화이트 랩소디(White Rhapsody)

전시장소
우란문화재단 우란1경
전시기간
2020-04-01 ~ 2020-05-27
홈페이지
http://www.wooranfdn.org/main.jsp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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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 랩소디White Rhapsody


<화이트 랩소디White Rhapsody >는 백색에 관한 전시다. 그 출발은 오랫동안 민족 색채로 작동되어 온 백색의 면모를 지금의 시각에서, 다양한 감각으로 접근해 보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백색을 에워싼 집단의 서사와 합의된 시선을 개별화시키고 부분을 해체하여 바라보고자 한다. 선험적으로 존재하는 색채가 아니라 여러 단계의 문화적 굴절과 의미화를 거쳐 성취해 낸 시대의 표피이자 집단의 안면으로써 백색을 인식했던 까닭이다.
지나가 버린 과거의 시간들을 몇백 년에서 몇 년 단위의 마디로 쪼개어, 백색의 궤적을 좇다 보면 때 묻은 삶의 정경들과 하얗게 표백된 언어 사이에서 자주 길을 잃게 된다. 야트막한 탐색과 상상력에 기대어 시공의 틈과 인식의 한계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전시의 형질을 채워나가고 매무새를 가다듬는 과정에 못지않게 자꾸만 되묻고, 다가올 질문들을 예비하는 시간이 길어졌던 이유다. 하나의 미적 담론으로써 백색의 문화사가 구축되고, 재맥락화되는 과정을 좇는 일은 백색의 자리와 그것에 의해 지워진 자리를 함께 가늠해 보는 일이다. 나아가, 시각적 외형뿐만 아니라 온도와 촉감, 빛과 향과 같은 다중적 감각을 통해 백색에 다가서는 일은 기획 주체의 과제이자 전시의 실질적 구심체인 창작자와 연구자들이 함께 고민하고 견인하는, 모두의 일이 되었다.
전시는 백색이 표상해 온 상징적 의미와 이론화의 역사를 전시품을 통해 증거하는 일에만 골몰하지 않는다. 또한 백색 사물의 시각적 계보 형성을 통해 ‘한국적인’ 혹은 ‘전통적인’ 어떤 것으로 정전화시키는 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고자 하였다. 그렇게 전통 공예와 유물, 탈속의 미술품과 일상의 물질문화가 병존하는 세계에서 선택적으로 이루어진 백색’화’의 과정을 따라가는 일에 무게를 두고자 하였다. 다만, 그 안에서 기획적 서사와 작업들의 함의들이 어느 지점에서라도 서로 만나 공명하기를 바랐다.
한편, 백색에 관한 민족주의적 시선과 미술사적 담론으로부터 차츰차츰 멀어지는 동안, 다양한 발견들이 도출되었다. ‘우리’와 ‘민족’이라고 명명한 결계 안에서 누군가에 의해 선별, 강화되며 때로 연출된 백색 풍경에 서늘한 시선을 던져보는 것은 집단의 담론을 부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종류의 발견을 이끌어 내기 위함이다. 이를 위해 우리의 신체, 그것과 밀접하게 맞닿아있는 일상의 사물들과 삶의 경관, 국가 단위의 사건 등으로 시선을 넓혔다가 질료 단위의 미시적 세계로 좁혀 보기도 했다. 그 안에서 마주한 백색 군중과 개인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면서 백색이 구사하는 다채로운 분신술을 목격할 수 있었다.
전통과 당대성, 식민과 탈식민, 로컬과 글로벌, 노동과 수행, 공예적 완결성과 산업적 미감과 같은 극점들을 오가다 보면 백색에 대한 발견과 질문들이 조밀하게 나뉘고 다시 증식해 나간다. 연결되는 물음표 사이를 서성이며, 다른 성격의 질문을 던져본다. 이것은 누구의 이야기일까. 그때의 ‘흰’과 여기의 ‘흰’ 것들, 우리의 세계와 나의 일상과 어떻게 이어지고 어긋나는 것일까. 저도 모르게 휩쓸려 온 서사시의 선율 안에서 우리는 어느 마디쯤 와있는 것일까.
마침내 <화이트 랩소디>로 명명한 백색의 전시 공간을, 작품이 대리하게 될 세계의 심상을 상상하게 된다. 전시 설치가 마무리되기 전에는 도저히 명료하게 알 수 없는 불투명하고도 불균질한 자리에 대해서. 그 안에 놓인 작업들은 아마도 긴 질문에 대한 단편적 대답, 복잡한 설명들을 무화시키는 추상적 언어로써 오늘날의 시제에 적합한 앙상블을 구성할 것이다.   
전시 <화이트 랩소디>는 다양한 감각의 백색을 발견해 내고, 새로운 감각으로 펼쳐내기 위해 다섯 작가들(김경태, 여다함, 신현정, 주세균, 최고은)을 초청하였다. 대부분 70년대 말에서 80년대에 태어나 대도시에서 자란 세대로, 각자의 예술적 연구에 기초한 미적 실천들을 주어진 조건 안에서 자유롭게 전개해 온 창작자들이다. 각기 다른 미적 탐구와 실행 전략을 바탕으로 작가들은 인공 백색의 표면과 구조를 통해 그 안에 여러 결의 서사와 감각을 담아낸다. 전시는 다양한 물리적 조건을 아우르며 절충해낸 인공적 환경이지만, 여러 관점에서 도출된 작업들이 이웃하며 생성해낸 우연한 질서와 심상이 흐르는 다색의 백색 풍경이다.
전통 도예의 기법을 방법론 삼아 개념적 오브제를 제작해온 주세균은 검은 바탕의 도자를 백자 표면으로 만들어가는 공예적 수행의 과정과 회화적 우연성을 효과적으로 제시한다. 새롭게 선보이는 군집 형의 오브제들은 물레 성형에서 벗어나 조각적 메커니즘과 즉흥적 핸드 드로잉을 결합하여 도자를 재현하고, 백색을 연출한 非도자적 작업이다. 
지난 몇 년간, 직물을 회화의 표면으로 실험해온 신현정은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옥양목과 전통 직물을 활용하여 직물-회화-빛의 구조물을 선보인다. 생경한 이음매와 겹들, 가느다란 빛의 통로와 무늬가 생겨난 천들에 온도와 촉감이 입혀진다. 백색 표면에 투영된 여성 신화와 자기 서사를 이어내는 긴 시간성은 옷을 지어온 이들과 그것에 살을 맞댈 존재들에 관한 무한한 상상을 심어준다. 
여다함은 백색의 비정형성과 불투명성을 표현해 낼 수 있는 매체로써 흰 연기와 흩어지는 향에 주목한다. 연기는 ‘하얗게 불태운 순간’을 중개하고, 어떤 물질이 연소되어 사라지는 모습을 은유한다. 백색에 대한 작가의 통찰은 고정된 시각성에 머물지 않고 검은 향이 흰 연기로 변해 피어 오르고 다시 회색 먼지가 되어 사라지는 시간성에 머문다.
도시와 건축, 사물의 단면을 밀착된 시선으로 담아 온 김경태는 백색 조명 즉, 흰 색으로 인지처리되는 빛의 방출과 전기적 충돌을 파편적 구도와 추상적 질감으로 잡아낸다. 본디 광학 기기인 카메라로 인공 광원을 제공하는 조명장치의 표면을 피사체 삼아 빛의 운동성과 물질성을 드러내는 일은 독특한 재귀 행위다. 백색은 방출되고, 투과되며, 전환되는 여러 위치의 에너지다.
흰색에 관한 예민한 감각과 관찰을 바탕으로 일련의 조각작업을 전개해 온 최고은은 대량 생산되고 버려지는 백색가전의 형질과 구조, 공업적 재료의 적용, 색채의 변성을 조각적 포디움에 대입하여 번안해 낸다. 다양한 유형학적 풍경들을 상기시키는 백색의 입상들은 미니멀 조각처럼 제작된 기성품, 혹은 명품 가전처럼 서있는 표정 없는 미술품. 둘 사이의 교차된 위상을 통해 추상성과 통속성의 손쉬운 전치 관계를 차가운 위트로 드러낸다.

이처럼, 각각의 작업이 만들어내는 연기와 그림자, 빛과 가루의 날림, 막을 통해 투영되거나 일그러지는 곡면들은 끊임없이 해석의 종합을 방해하거나 지연시킨다.  더불어,  건축가 정이삭이 제안한 백색 공간은 작품들이 자리하는 토폴로지를 제공하면서도, 그 자체로 시공간의 연결과 분절에 관한 다층적 해석을 불러일으키는 덩어리이다. 
맑고 투명하게 빛나는 백색의 유산을 마주하며 우리가 애써 들춰보려 했던 것은 천천히 낡아가고 불현듯 덧입혀진 하이얀 막과 불투명한 막이 아니었을까. 백색이 지나간 표면과 그것이 스며든 내면. 충분히 스며들지 못한 채 그 안팎에 달라붙어 있는 여러 농도의 회색 그림자와 누르스름한 얼룩들을 더듬어가며 좀 더 실증적이고 다채로운 발견들을 해 나갔으면 한다. 전시가 눌러 삼키지 못한 것들은 구체적 언어로, 말과 글이 묘사해내지 못한 것들은 작업으로, 서로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민족적 질풍과 요동을 담아낸 ‘광시곡’(Rhapsody)은 끝 지점에서 느닷없이 변조와 변박이 일어나고, 어느 곁에 처음으로 되돌아오는 내부의 끈질긴 서사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니까, 백색에 관한 이야기는 결국 우리의 이야기인 셈이다.


글 조주리 (협력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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